001 건축 불광사 불광사는 산시성 우타이현에 있으며, 사찰 이름은 '불광(佛光)'의 상서로운 감응에서 유래한다. 당 대력 5년 법조(法照)가 이곳에서 불광사 남쪽으로 여러 줄기 흰빛을 멀리서 보았고, 원화 연간에는 다시 '불광사 곁에 경운(慶雲)이 나타났다'는 상주가 있었다. 돈황 『오대산행기』는 대불전 일곱 칸, 미륵각 삼층 일곱 칸을 기록한다. 회창 법난 이후 승려 원성(願誠)이 '불광사를 다시 찾아' 차례로 새로 이루었으니, 오늘날 남아 있는 동대전이 바로 이 재건의 유물이다. 당나라 산시성 우타이현 불광사 · 대불광사 · 우타이현 →
002 건축 선화사 송나라 사신 주변(朱弁)은 금나라에 억류된 뒤 대보은사로 옮겨져, 요나라 말기의 전화(戰火)가 남긴 폐허 속에서 십사 년을 살며 승려 원만(圓滿)이 모금하여 팔십여 칸을 재건하는 과정을 직접 지켜보았다. 그는 그 경험을 비문에 기록하였고, 그리하여 그 자신의 유폐 생활은 이 당대(唐代) 고찰이 되살아난 증언이 되었다. 당나라 산시성 다퉁시 선화사 · 대보은사 · 개원사 →
003 건축 관성대 후대 문헌은 옛 양성의 측경 전통을 서주 시대 주공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으로 전한다. 당대에는 이곳에 석표를 세웠고, 원대에는 높이 네 장의 표식 관성대를 건립했다. 1930년대 중국영조학사 연구원 류둔전의 조사는 포격 이전의 실측 도면과 사진을 남겼지만, 학사가 위탁받아 마련한 중수 계획은 전쟁이 갑자기 닥치면서 실행되지 못했다. 1944년 예중회전 때 일본군 포격으로 대 위의 동실이 무너졌으며, 1975년 복원 뒤에도 동벽에는 두 곳의 포탄 자국이 남아 있다. 서주 허난성 덩펑시 가오청진 관성대 · 덩펑 관성대 · 가오청 관성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