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건축 옥천사 수(隋) 개황 연간에 진왕(晉王) 양광(楊廣)이 천태종의 고승 지의(智顗)를 위하여 당양(當陽) 옥천산에 도량을 조영하였다. 북송 가우(嘉祐) 6년, 학언(郝言)과 이모 한씨(韓氏)가 쇠를 희사하고 양절(兩浙)의 장인들이 십삼층 불치사리(佛牙舍利) 보탑을 주조하였다. 송 말의 전란 뒤 사원은 한때 “날로 더 쇠폐해져” 갔으나 원대에 광주(廣鑄)가 전각을 재건하였다. 만력(萬曆) 30년에 승려 정회(正誨)가 대전을 고치기로 발원하고 거사 임승주(任乘舟)가 조수(助修)에 참여하였으며, 현존하는 대전에는 아직 원대의 하람(下檻)과 명대의 두공(斗栱)이 남아 있다. 수나라 후베이성 당양시 옥천사 · 옥천철탑 · 옥천산 →
002 건축 봉래각 산둥 옌타이의 봉래각은 북송에 처음 세워져 단애산 정상에 자리한다. 산 아래의 송·원 시대 항지(港池)는 명대에 확충되어 등주 수성이 되었다. 원대 지방지, 출토된 전선, 명·청 시대 성방 문헌과 1903~1928년의 옛 사진이 누각과 군항의 위아래 관계를 기록한다. 북송 산둥성 옌타이시 봉래구 봉래각 · 봉래수성 · 봉래 →
003 건축 천일각 천일각은 저장성 닝보의 월호(月湖) 서쪽에 있으며, 범흠(范欽)이 명 가정 연간에 지어 지금까지 보존되어 온 사가 장서루이다. 이 글은 황종희(黃宗羲)·전조망(全祖望)·완원(阮元) 등의 원문으로 범씨의 책 모으기와 수서(守書) 제도, 그리고 청대 《사고전서(四庫全書)》의 징서(徵書)를 이야기하고, 또 《천일각장서사지(天一閣藏書史志)》와 근대 옛 사진을 결합하여 청 말기의 전란으로 인한 실서(失書), 민국 시기의 도서(盜書), 1933년의 중수(重修) 및 항전 시기의 이서(移書) 경과를 정리하였다. 명나라 저장성 닝보시 해서구 천일각 · 범씨 천일각 · 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