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건축 육화탑 육화탑은 오월국 개보 3년(970년)에 전당강 조수를 진압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선화 연간에 병화로 소실되었고, 남송의 승려 지담이 자비로 모금하여 7층으로 재건하였다. 완공 후에는 야간 항행의 등대 역할도 겸하였다. 이후 수차례 화재와 수복을 거쳤으나 벽돌 심체는 지금까지 남아 있다. 십국-오월 저장성 항저우시 육화탑 · 항저우 · 오월국 →
002 건축 푸닝사 건륭 20년, 오이라트 4부의 수령들이 피서산장에서 작위를 받고 상을 받으며 술을 올려 만수를 빌었고, 푸닝사는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세워졌다. 사원은 티베트 사미예 사원의 배치를 본떴으며, 후부는 대승지각과 사주, 탑군이 층층이 높아진다. 가경 연간에 이르러 대웅보전은 이미 비가 새고 썩어 있었다. 백준이 절을 유람하며 쓰기를, 머리를 들어 우러러봐도 대불의 배조차 보이지 않아 ‘한 층 더 높이 올라가야’ 비로소 그 얼굴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청조 허베이성 청더시 푸닝사 · 대불사 · 외팔묘 →
003 건축 보타종승지묘 양쉬(杨煦)가 문헌 기록과 청대의 그림을 근거로 고증한 바에 따르면, 건륭 연간 보타종승지묘의 대홍대(大红台)에는 원래 완전한 네 층이 있었고 만법귀일전(万法归一殿)의 금색 지붕은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훗날 홍대에서 한 층이 줄었고, 지붕 위로 모습을 드러낸 두 기의 자단목(紫檀木) 탑에는 탑을 덮는 정자(塔罩亭)를 증축하였다. 폰 뭄이 그것들을 촬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정자는 1904년에 잇달아 무너졌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익숙한 윤곽은 층을 줄이고 정자를 더하고 붕괴와 현대의 복원을 거친 것이다. 청조 허베이성 청더시 솽차오구 보타종승지묘 · 보타종승묘 · 소포탈라궁 →
004 건축 수미복수지묘 건륭 45년에 건륭제는 자시룬부사(扎什伦布寺)를 본떠 수미복수지묘를 세워 후장(后藏)에서 멀리 온 6세 반선을 맞이하였다. 반선은 열하에 겨우 두 달 남짓 머물렀으나, 산문(山门)·비정(碑亭)·대홍대(大红台)·금정 전루와 침실은 이번 조근(朝觐)을 위해 하나의 완전한 주거 사원을 이루었다. 가경 연간에는 길상법희루(吉祥法喜楼) 원내의 누수된 위방(围房)과 전 앞 대정(台顶)이 잇달아 답사되고 수리되었으며, 1930년대 옛 사진은 또 홍대·금정과 유리탑이 앞뒤로 이어지는 형태를 남겼다. 청조 허베이성 청더시 솽차오구 수미복수지묘 · 수미복수묘 · 티베트 불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