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TAGE RECORD

수미복수지묘

건륭 45년에 건륭제는 자시룬부사(扎什伦布寺)를 본떠 수미복수지묘를 세워 후장(后藏)에서 멀리 온 6세 반선을 맞이하였다. 반선은 열하에 겨우 두 달 남짓 머물렀으나, 산문(山门)·비정(碑亭)·대홍대(大红台)·금정 전루와 침실은 이번 조근(朝觐)을 위해 하나의 완전한 주거 사원을 이루었다. 가경 연간에는 길상법희루(吉祥法喜楼) 원내의 누수된 위방(围房)과 전 앞 대정(台顶)이 잇달아 답사되고 수리되었으며, 1930년대 옛 사진은 또 홍대·금정과 유리탑이 앞뒤로 이어지는 형태를 남겼다.

시대
청조
지역
허베이
LOCATION
허베이성 청더시 솽차오구
READING
112 분 분량
수미복수지묘 - xumifushouzhimiao old 01 ov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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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건륭 43년(1778), 6세 반선이 내지(内地)로 가기를 청하였다. 이듬해 6월, 그는 후장(后藏)의 자시룬부사를 출발하여 시닝(西宁)·귀화성(归化城)과 둬룬눠얼(多伦诺尔)을 거쳐 건륭 45년 7월에야 열하에 도착하였다. 건륭제는 이미 보타종승지묘 왼쪽 언덕에 새 사찰을 세워, “자시룬부(札什伦布)”를 “수미복수(须弥福寿)”로 번역하고, 후장에 있는 그의 주거 사원을 본떠 반선과 수행 승려들을 머물게 하였다.

이 사찰은 비록 반선을 위해 지어졌지만, 안에는 건륭제가 사용하는 어좌루(御座楼)가 따로 있다. 산문에서 북쪽으로 비정(碑亭)과 보방(宝坊)이 세 층의 도강(都纲) 전루 “묘고장엄(妙高庄严)”으로 이끌고, 어좌루는 전의 동쪽에 있으며, 더 안쪽에는 두 층의 불루(佛楼)와 “길상법희(吉祥法喜)”전이 있다. 도강과 침실은 후장 양식대로 지었고, 산문·전루·어좌루와 불루는 또 남북 방향을 따라 층층이 늘어서 있다. 반선의 거처와 건륭제가 절에 올 때 사용하는 공간이 이처럼 같은 건축군 안에 자리 잡은 것이다.

7월에 반선이 명을 받들어 들어와 머물렀고, 9월에 열하를 떠나 경성으로 갔으며, 11월에 두창(痘症)으로 베이징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를 맞이하기 위해 지은 이 사원이 실제로 반선을 접대한 것은 겨우 두 달 남짓이었다. 이듬해 봄, 6세 반선의 중요한 제자 나포장돈주포(罗卜藏敦珠布) 등 스무 명이 절에 남아 내지 라마 백여든 명에게 후장의 경율(经律)을 전수하였다. 수미복수지묘는 이로써 후장 경율을 전수하는 장소가 되었다. 가경 19년에 길상법희루 원내의 위방 십칠 칸이 누수로 답사를 받았으나 손상이 비교적 가벼워 잠시 미루었고, 이어서 실제로 수리한 것은 누 앞으로 돌출된 세 칸 포하(抱厦)의 대정이었으며, 절 담장은 따로 이장삼척(二丈三尺)을 쌓아 고쳤다. 1934–1935년에 헤다 모리슨이 잇달아 두 번 열하를 찾았고, 두 번째에는 건축 촬영에 더 적합한 대형 카메라로 바꾸어 보충 촬영을 하였다. 그녀가 남긴 원경·안뜰 지붕 마루와 금정 사진은 같은 시기에 간행된 전경 사진과 함께, 대홍대·묘고장엄전과 유리탑이 앞뒤로 이어지는 형태를 보존하였다.

역사 문헌

《흠정열하지》

须弥福寿庙 岁在庚子,恭逢

皇上七旬万寿,时则班禅额尔德呢祝

厘来自后藏,

上嘉其远至,于山庄建札什伦布庙居之。唐古特语“札什为福寿,伦布谓须弥山也。庙门南向,恭刻

御书额曰“须弥福寿之庙”。庙额多具四体书,东西二山门有题额,一曰梵香遍满,一曰法界圆成。碑亭一,额曰智光普照,宝坊一,额曰总持佛境。都纲殿楼三重,额曰妙高庄严,殿内面南,额曰宝地祥轮。联曰:开大般若台,朗照宗镜;具妙庄严相,深护法云。又曰:证三摩菩提,圆装七宝;超六波罗密,座涌千花。又曰:圆镜照三千,是空是色,妙香闻二六,即佛即心。又曰:妙曼拥珠城,庄严具足,芬陀承宝盖,福慧圆成。面北额曰福缘恒演,联曰:现象香国身,增五福德,说最上乘法,证八吉祥。又曰:仙露净尘根,花垂薝卜,香风翔法界,乐送迦陵。又曰:证最胜因,光华开七宝,溥无量寿,安乐演三乘。东为

御座楼,联曰:“风铃常转莲花藏,贝叶闲披金字经。”更内佛楼二重,额曰生欢喜心,联曰:龙象庄严,妙不可思议,人天欢喜,普如是吉祥。又曰:见性悟真源,参圣如意,定心观妙谛,示佛因缘。殿上层额曰吉祥法喜,殿内联曰:宝阁护香云,静资礼梵,灵峰呈寿相,妙悦安禅。下层额曰芬陀普涌,殿内联曰:初地总持超梵乘,恒沙普演护祥轮。又

御座楼南北殿各二重,北殿悬“南无阿弥陀佛”额,联曰:到来佛相原如是,静处尘心那更生。又曰:功德无边复无量,因缘非色亦非空。南殿东楹联曰:现法化报身,共依圆觉;摄闻思修教,遍示妙明。西楹联曰:象法涌祥轮,西方震旦;智光腾宝炬,海藏天宫。客堂额曰:万法宗源。联曰:便有香风吹左右,似闻了义示缘因。仰惟

寿宇宏开,

皇风普鬯,西方妙法,同我太平。伏诵

御制记文,仰见我

朝声教恢纮,卓越千古,非独耆崛阇山阿耨达水,颂无量功德已也。

수미복수묘(须弥福寿庙). 경자(庚子)년에 공숭히 황상(皇上)의 일흔 번째 만수(万寿)를 맞이하니, 그때 반선에르데니(班禅额尔德呢)가 복을 빌러 후장(后藏)에서 왔다. 황상께서 그 멀리서 옴을 아름답게 여기사 산장(山庄)에 자시룬부묘를 세워 그를 머물게 하였다. 당고특(唐古特, 티베트)어로 “자시(札什)는 복수(福寿)요, 룬부(伦布)는 수미산(须弥山)을 이른다.” 묘문(庙门)은 남쪽을 향하고 공숭히 어서(御书) 액을 새겨 “수미복수지묘”라 하였다. 묘의 현액에는 대개 네 가지 문자(四体书)가 갖추어져 있고, 동서 두 산문에는 제액이 있어 하나는 “범향편만(梵香遍满)”이요 하나는 “법계원성(法界圆成)”이다. 비정(碑亭) 하나에는 액이 “지광보조(智光普照)”요, 보방(宝坊) 하나에는 액이 “총지불경(总持佛境)”이다. 도강(都纲) 전루는 세 겹으로 액이 “묘고장엄(妙高庄严)”이요, 전 안 남쪽을 향한 곳에 액이 “보지상륜(宝地祥轮)”이다. 연(联)에 이르기를 “크게 반야대(般若台)를 여니 종경(宗镜)을 밝게 비추고, 묘한 장엄상(庄严相)을 갖추니 법운(法云)을 깊이 보호하도다.” 또 이르기를 “삼마보리(三摩菩提)를 증득하니 칠보(七宝)를 두루 장식하고, 육바라밀(六波罗密)을 뛰어넘으니 자리에서 천 송이 꽃이 솟도다.” 또 이르기를 “둥근 거울이 삼천 세계를 비추니 이것이 공(空)이요 색(色)이며, 묘향(妙香)이 십이시(二六)에 들리니 이것이 부처요 마음이로다.” 또 이르기를 “묘만(妙曼)이 구슬 성을 둘러싸니 장엄이 구족(具足)하고, 분타(芬陀)가 보개(宝盖)를 받치니 복혜(福慧)가 원만히 이루어지도다.” 북쪽을 향한 액은 “복연항연(福缘恒演)”이요, 연에 이르기를 “향국(香国)의 몸을 나타내어 오복덕(五福德)을 더하고, 최상승(最上乘)의 법을 설하여 팔길상(八吉祥)을 증득하도다.” 또 이르기를 “신선의 이슬이 티끌 뿌리를 씻으니 꽃이 점복(薝卜)에 드리우고, 향기 바람이 법계(法界)에 나니 악기가 가릉(迦陵)을 보내도다.” 또 이르기를 “가장 뛰어난 인(因)을 증득하니 광화(光华)가 칠보를 열고, 무량수(无量寿)를 널리 펴니 안락하게 삼승(三乘)을 연설하도다.” 동쪽은 어좌루(御座楼)로 연에 이르기를 “풍령(风铃)은 늘 연화장(莲花藏)을 돌리고, 패엽(贝叶)에는 한가히 금자경(金字经)을 펼치도다.” 더 안쪽 불루는 두 겹으로 액이 “생환희심(生欢喜心)”이요, 연에 이르기를 “용상(龙象)의 장엄은 묘하여 불가사의하고, 인천(人天)의 환희는 두루 이와 같이 길상하도다.” 또 이르기를 “성(性)을 보아 참된 근원을 깨우치니 성(圣)을 참함이 여의(如意)하고, 마음을 고요히 하여 묘체(妙谛)를 관하니 부처의 인연을 보여주도다.” 전의 상층 액은 “길상법희(吉祥法喜)”요, 전 안 연에 이르기를 “보각(宝阁)이 향운(香云)을 보호하니 고요히 범(梵)에 예할 자양이 되고, 영봉(灵峰)이 수상(寿相)을 드러내니 묘하게 기뻐하며 선(禅)에 안주하도다.” 하층 액은 “분타보용(芬陀普涌)”이요, 전 안 연에 이르기를 “초지(初地)의 총지(总持)가 범승(梵乘)을 뛰어넘고, 항하사(恒沙)가 두루 펴져 상륜(祥轮)을 보호하도다.” 또 어좌루의 남북 전이 각각 두 겹이니, 북전에는 “남무아미타불(南无阿弥陀佛)” 액을 걸고, 연에 이르기를 “이르러 본래 부처의 상이 이와 같으니, 고요한 곳에서 티끌 마음이 어찌 다시 생기랴.” 또 이르기를 “공덕이 끝이 없고 또 한량이 없으니, 인연은 색(色)도 아니요 공(空)도 아니로다.” 남전 동쪽 기둥 연에 이르기를 “법화보신(法化报身)을 나타내니 함께 원각(圆觉)에 의지하고, 문사수(闻思修)의 가르침을 거두어 두루 묘명(妙明)을 보여주도다.” 서쪽 기둥 연에 이르기를 “상법(象法)이 상륜을 솟게 하니 서방과 진단(震旦)이며, 지광(智光)이 보거(宝炬)에서 솟으니 해장(海藏)과 천궁(天宫)이로다.” 객당(客堂) 액에는 “만법종원(万法宗源)”이요, 연에 이르기를 “곧 향기 바람이 좌우에 부는 듯하고, 요의(了义)를 들어 인연을 보여주는 듯하도다.” 우러러 생각하건대 수우(寿宇)를 넓게 여시고 황풍(皇风)을 두루 펴시니, 서방의 묘법(妙法)이 우리의 태평과 함께하도다. 엎드려 어제기문(御制记文)을 외우고 우러러 우리 조정의 성교(声教)가 넓게 퍼져 천고를 뛰어넘음을 보니, 오직 기굴사산(耆崛阇山)과 아뇨달수(阿耨达水)가 한량없는 공덕을 찬송하는 데 그치지 않도다.

《[乾隆]钦定热河志》(《흠정열하지》) 권80 ‘수미복수묘’, 청 화신 등 봉칙 찬수

先是,四十三年,章嘉胡图克图奏称:后藏大喇嘛班禅额尔德呢久欲瞻仰天颜,因庚子岁恭遇皇上七旬万寿,敬拟入觐祝厘,得旨俞允,命驻藏大臣传旨宣谕。”

그 이전인 43년에 장가호도극도(章嘉胡图克图)가 주하여 이르기를, “후장(后藏)의 대라마 반선에르데니가 오래전부터 천안(天颜)을 우러러 뵙고자 하여, 경자년에 공숭히 황상의 일흔 번째 만수를 맞는 인연으로 삼가 들어와 조현(入觐)하고 축리(祝厘)하기를 헤아려 청하니, 윤허(俞允)하는 지시를 얻어 주장대신(驻藏大臣)에게 명하여 지시를 전하고 선포하게 하였다.”

四十四年,经驻藏大臣留保住等奏称:“班禅额尔德呢接奉俞旨,不胜感悦,即于本年六月由扎什伦布起程,谢恩进佛等语。旋命留保住护送遄行,至西宁衮布庙,命西安将军伍弥泰协同经理,又命理藩院侍郎保泰、散秩大臣万福等往迎,赐东珠、朝珠、鞍马、银币等件。

44년에 주장대신 유보주(留保住) 등을 거쳐 주하여 이르기를, “반선에르데니가 윤허하는 지시를 받들고 감격하고 기뻐함을 다하지 못하여, 곧 올해 6월에 자시룬부에서 출발하여 은혜에 감사하고 불상을 바친다”는 등의 말을 하였다. 곧 유보주에게 명하여 호송하며 빨리 가게 하고, 시닝(西宁)의 곤포묘(衮布庙)에 이르러 서안장군(西安将军) 오미태(伍弥泰)에게 명하여 함께 협조하여 처리하게 하고, 또 이판원시랑(理藩院侍郎) 보태(保泰)·산직대신(散秩大臣) 만복(万福) 등에게 명하여 가서 맞이하게 하며, 동주(东珠)·조주(朝珠)·안마(鞍马)·은폐(银币) 등 물품을 하사하였다.

四十五年三月,命乾清门侍卫乌尔图那逊、銮仪卫大臣达福等至归化城,以上用车舆仪仗赐之。至岱罕庙,命皇六子及章嘉胡图克图、尚书永贵等往迎,赐嵌帽袈裟、朝珠等件。至多伦诺尔,命御前侍卫丰绅济伦往,赐敕书及嵌珠帽金丝袈裟等件。至是抵热河。

45년 3월에 건청문시위(乾清门侍卫) 오이도나손(乌尔图那逊)·난의위대신(銮仪卫大臣) 달복(达福) 등에게 명하여 귀화성(归化城)에 이르러 황상이 쓰는 수레와 의장(仪仗)을 그에게 하사하게 하였다. 대한묘(岱罕庙)에 이르러 황육자(皇六子)와 장가호도극도·상서(尚书) 영귀(永贵) 등에게 명하여 가서 맞이하게 하며, 꽂은 모자와 가사(袈裟)·조주 등 물품을 하사하였다. 둬룬눠얼(多伦诺尔)에 이르러 어전시위(御前侍卫) 풍신제륜(丰绅济伦)에게 명하여 가서 칙서(敕书)와 구슬을 꽂은 모자와 금실 가사 등 물품을 하사하게 하였다. 이에 이르러 열하에 도착하였다.

七月丁酉,于澹泊敬诚殿跪请圣安,赐金银曼达各一,及金壶香炉等件。上御依清旷殿,赐坐,赐茶果筵宴,命至须弥福寿之庙居住。

7월 정유(丁酉)일에 담박경성전(澹泊敬诚殿)에서 꿇어 성안(圣安)을 청하니, 금·은 만다라(曼达) 각 하나와 금 주전자·향로 등 물품을 하사하였다. 황상께서 의청광전(依清旷殿)에 어가(御)하여 자리를 하사하고 차와 과일의 연회를 하사하며, 명하여 수미복수지묘에 가서 머물게 하였다.

庚子,上御万树园,赐宴,赐嵌正珠祖衣一分及金银器皿。辛丑,复赐茶果。八月己酉、戊午,亦如之。庚申,上御万树园,赐观火戏,壬戍亦如之。乙丑,赐宴,赐冠服。九月丁丑,命护送至京,住西黄寺。

경자(庚子)일에 황상께서 만수원(万树园)에 어가하여 연회를 하사하고, 정주(正珠)를 꽂은 조의(祖衣) 한 벌과 금·은 그릇을 하사하였다. 신축(辛丑)일에 다시 차와 과일을 하사하였다. 8월 기유(己酉)일과 무오(戊午)일에도 또한 그와 같이 하였다. 경신(庚申)일에 황상께서 만수원에 어가하여 불놀이를 보게 하사하니, 임술(壬戍)일에도 또한 그와 같이 하였다. 을축(乙丑)일에 연회를 하사하고 관복(冠服)을 하사하였다. 9월 정축(丁丑)일에 명하여 호송하여 경성에 이르게 하고 서황사(西黄寺)에 머물게 하였다.

谨按:黄教以宗喀巴为祖,其二大弟子,一曰根敦珠巴,八转世而为今达赖喇嘛,一曰凯珠布格埒克巴勒藏,六转世而为今班禅额尔德呢。世祖章皇帝时,达赖喇嘛来朝京师,建北黄寺以居之,越今百有余年,额尔德呢仰慕圣化,思觐天颜,因庚子岁,皇上七旬万寿,自后藏扎什伦布起程,跋涉二万里,虔申庆祝,出于至诚,实为国家吉祥盛事。上特命皇子大臣往迎,赐敕褒美,锡予优渥。而蒙古王公、台吉及喀尔喀卫拉特等,一闻其来,无不观欣舞蹈,执役恐后。至是展觐山庄宴赉有加命住须弥福寿之庙,肖其所居,以安徒众。嗣于上回銮前,先期进京,居西黄寺。臣等恭绎御制碑记,所谓“上以扬历代致治保邦之谟烈,下以答列藩倾心向化之悃忱”,仰见重熙累洽,中外一家,实为亿万年无疆之庆矣。

근안(谨按): 황교(黄教)는 종객파(宗喀巴)를 조(祖)로 삼고, 그 두 큰 제자는 하나는 근돈주파(根敦珠巴)로 여덟 번 전세(转世)하여 지금의 달래라마가 되었고, 하나는 개주포격륵극파륵장(凯珠布格埒克巴勒藏)으로 여섯 번 전세하여 지금의 반선에르데니가 되었다. 세조장황제(世祖章皇帝) 때에 달래라마가 경사에 와서 조하니 북황사(北黄寺)를 세워 그를 머물게 하였는데, 지금까지 백여 년이 지났다. 에르데니가 성화(圣化)를 우러러 흠모하여 천안을 뵙고자 하여, 경자년 황상의 일흔 번째 만수를 인연으로 후장 자시룬부에서 출발하여 이만 리를 험하게 걸어와 삼가 경축을 올렸으니, 지극한 정성에서 나온 것이니 실로 나라의 길상하고 성대한 일이다. 황상께서 특별히 황자와 대신에게 명하여 가서 맞이하게 하고 칙서를 낮추어 포미(褒美)하며 후하게 베풀어 주셨다. 그리고 몽골 왕공·태길(台吉)과 할하(喀尔喀)·위랄특(卫拉特) 등은 그의 옴을 듣자마자 기뻐 춤추지 않는 이가 없고, 역을 맡기를 뒤질세라 하였다. 이에 이르러 산장에서 조견을 베풀고 연회와 하사가 더해지며 명하여 수미복수지묘에 머물게 하되, 그가 머물던 곳을 닮게 하여 제자들을 편안하게 하였다. 이어 황상께서 환란(回銮)하시기 전에 미리 경성에 들어가 서황사에 머물렀다. 신 등이 삼가 어제비기(御制碑记)를 헤아리건대, 이른바 “위로는 역대의 치를 이루고 나라를 보전한 모열(谟烈)을 드높이고, 아래로는 여러 번국의 마음을 기울여 교화를 향한 간절한 정에 답한다” 하신 것은, 우러러 겹겹이 밝고 거듭 화합하여 중외(中外)가 한집이 됨을 보니, 실로 억만 년의 끝없는 경사이다.

《[乾隆]钦定热河志》(《흠정열하지》) 권24 《어만수원연반선에르데니성십즉사》 원주 및 근안, 청 고종 홍력 찬, 화신 등 봉칙 찬수

华言福寿等须弥,〈唐古特语伦布者,须弥山;札什者,福寿也。〉 建以班禅来祝厘。〈今年班禅额尔德尼来热河,为余祝七旬万寿,因仿后藏班禅所居庙式,特建此寺。〉 旧例已遥遵顺治,〈谓北黄寺,因五辈达赖喇嘛于顺治年间来京,特敕建寺居之。〉 新工犹近比康熙。〈去声。溥仁寺康熙五十二年建,为热河最古寺。〉 层楼初耸辉佛日,万树分栽蔚慧枝。 一语欲询驻锡者,有无法也抑无为。

화언(华言, 중국 말)으로 복수는 수미와 같다 하니 〈당고특어로 룬부(伦布)는 수미산이요, 자시(札什)는 복수이다.〉, 반선이 와서 축리(祝厘)하므로 지었도다 〈올해 반선에르데니가 열하에 와서 나를 위해 일흔 번째 만수를 축하하므로, 이에 후장의 반선이 머무는 사원 양식을 본떠 특별히 이 절을 세웠다.〉. 옛 사례는 아득히 순치(顺治)를 따랐고 〈북황사(北黄寺)를 말함이니, 5세 달래라마가 순치 연간에 서울에 왔을 때 특별히 칙으로 절을 세워 머물게 하였다.〉, 새 공사는 오히려 강희(康熙)에 가까이 견줄 만하도다 〈거성(去声). 보인사(溥仁寺)는 강희 52년에 세워 열하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다.〉. 겹층 누각이 처음 솟아 부처의 해에 빛나고, 만 그루 나무가 나뉘어 심겨 지혜의 가지를 무성하게 하도다. 주석(驻锡)하는 이에게 한마디 묻고 싶노니, 법이 있다 함인가 없다 함인가, 혹은 무위(无为)인가.

《[乾隆]钦定热河志》(《흠정열하지》) 권80 《자시룬부묘낙성기사》, 청 고종 홍력 찬

《수미복수지묘비문》

黄教之兴,以宗喀巴为鼻祖,有二大弟子:一曰根敦珠巴,八转世而为今达赖喇嘛;一曰凯珠布格埒克巴勒藏,六转世而为今班禅额尔德呢喇嘛。是二喇嘛盖递相为师,以阐宗风而兴梵教,则今之班禅额尔德呢喇嘛,实达赖喇嘛之师也。达赖喇嘛居布达拉,译华言为普陀宗乘之庙;班禅额尔德呢居扎什伦布,译华言为须弥福寿之庙,是前卫后藏所由分也。辛卯年,曾建普陀宗乘之庙于避暑山庄之北山,以祝厘也,亦以土尔扈特归顺也。今之建须弥福寿之庙于普陀宗乘之左冈者,则以班禅额尔德呢欲来觐,而肖其所居,以资安禅,且遵我世祖章皇帝建北黄寺于京师,以居第五达赖喇嘛之例也。然昔达赖喇嘛之来,实以敦请。兹班禅额尔德呢之来觐,则不因招致,而出于喇嘛之自愿来京,以观华夏之振兴黄教,抚育群生,海宇清晏,民物敉宁之景象,适值朕七旬初度之年,并为庆祝之举也。

황교의 흥기함은 종객파를 비조(鼻祖)로 하니, 두 큰 제자가 있어 하나는 근돈주파로 여덟 번 전세하여 지금의 달래라마가 되었고, 하나는 개주포격륵극파륵장으로 여섯 번 전세하여 지금의 반선에르데니라마가 되었다. 이 두 라마는 대대로 서로 스승이 되어 종풍(宗风)을 밝히고 범교(梵教)를 흥기케 하였으니, 그런즉 지금의 반선에르데니라마는 실로 달래라마의 스승이다. 달래라마는 포달라에 머무니 중국 말로 번역하면 보타종승지묘이고, 반선에르데니는 자시룬부에 머무니 중국 말로 번역하면 수미복수지묘이니, 이것이 전위(前卫)와 후장이 나뉜 까닭이다. 신묘년에 일찍이 피서산장의 북산에 보타종승지묘를 세웠으니, 축리를 위함이요 또 토르구트의 귀순을 위함이었다. 지금 보타종승의 왼쪽 언덕에 수미복수지묘를 세움은, 반선에르데니가 와서 조현하고자 하므로 그가 머무는 곳을 닮게 하여 선(禅)에 편안히 머물 자양으로 삼고자 함이요, 또 우리 세조장황제께서 경사에 북황사를 세워 제5세 달래라마를 머물게 한 사례를 따름이다. 그러나 지난날 달래라마의 옴은 실로 돈청(敦请, 간곡히 청함)에 의한 것이었다. 이제 반선에르데니의 조현함은 불러들임에 의하지 않고 라마가 스스로 원하여 서울에 와서, 화하(华夏)가 황교를 진흥하고 뭇 생명을 어루만져 기르며, 해우(海宇)가 맑고 평안하며 백성과 만물이 평온한 경상(景象)을 보고자 함에서 나온 것이니, 마침 짐의 일흔 번째 생신을 당하여 아울러 경축하는 일이 된 것이다.

夫朕七旬不欲为庆贺繁文,已预颁谕旨,而兹喇嘛之来,则有不宜阻者。盖国家百余年,升平累洽,中外一家,自昔达赖喇嘛之来,至今亦百余年矣。且昔为开创之初,如喀尔喀、厄鲁特尚有梗化者;今则重熙休和,喀尔喀久为世臣,厄鲁特亦无不归顺,而一闻班禅额尔德呢之来,其欢欣舞蹈,欲执役供奉,出于至诚,有不待教而然者。则此须弥福寿之庙之建,上以扬历代致治保邦之谟烈,下以答列藩倾心向化之悃忱,庸可已乎?既为记,复作赞言。

무릇 짐은 일흔에 경하하는 번잡한 문례를 하고자 하지 않아 이미 미리 유지(谕旨)를 반포하였으나, 이 라마의 옴은 마땅히 막아서는 안 될 바가 있다. 대개 나라가 백여 년 동안 태평이 거듭 화합하여 중외가 한집이 되었고, 지난날 달래라마가 온 이후 지금까지 또한 백여 년이다. 게다가 지난날은 창업의 초기라 할하(喀尔喀)·액로특(厄鲁特)에 오히려 교화를 거스르는 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겹겹이 밝고 화평하여 할하는 오래전부터 세신(世臣)이 되었고 액로특도 귀순하지 않음이 없으며, 반선에르데니의 옴을 듣자마자 그 기뻐 춤추며 역을 맡고 받들어 모시고자 함이 지극한 정성에서 나와 가르치지 않아도 그러한 바가 있다. 그런즉 이 수미복수지묘의 건립은 위로는 역대의 치를 이루고 나라를 보전한 모열을 드높이고, 아래로는 여러 번국의 마음을 기울여 교화를 향한 간절한 정에 답하는 것이니, 어찌 그만둘 수 있으랴. 이미 기(记)를 지었고 다시 찬언(赞言)을 짓는다.

印度既迥遥,佛教亦式微。梵僧舍天竺,多临卫藏地。自唐代已然,是为法源处。一译犹云近,三乘无舛讹。

인도는 이미 아득히 멀고 불교도 또한 쇠미해졌도다. 범승(梵僧)이 천축(天竺)을 버리고 많이 위장(卫藏) 땅에 이르렀으니, 당대(唐代)부터 이미 그러하여 이곳이 법의 근원이 되는 곳이로다. 한 번 번역한 것은 오히려 가깝다 하고, 삼승(三乘)에 어긋남이 없도다.

宗乘向东昌,诚如佛所记。

종승(宗乘)이 동쪽으로 향하여 창성하니, 참으로 부처께서 기록하신 바와 같도다.

卫藏虽徼外,实在震旦中。达赖及班禅,宗喀巴高弟,前后燃智灯。三车之纲领,真文与满字。于是溯轨躅。

위장은 비록 변경 밖이나 실로는 진단(震旦) 안에 있도다. 달래와 반선은 종객파의 높은 제자로 앞뒤로 지혜의 등불을 켰도다. 삼차(三车)의 강령(纲领)은 진문(真文)과 만자(满字, 만주 문자)이니, 이에 그 궤척(轨躅, 발자취)을 거슬러 올라가도다.

蒙古众林林,莫不倾心向。皈依三宝门,神道易设教。兹闻班禅来,如婴儿遇母。观化阐宗风,诚为吉祥事。

몽골의 무리가 숲처럼 많아 마음을 기울여 향하지 않음이 없도다. 삼보(三宝) 문에 귀의하니 신도(神道)로써 가르침을 세우기 쉽도다. 이제 반선이 온다 함을 들으니 갓난아이가 어미를 만난 듯하도다. 교화를 보고 종풍을 밝히니 참으로 길상한 일이로다.

布达拉既建,伦布不可少,择向兴工作,亦以不日成。都纲及寝室,一如后藏式。

포달라가 이미 세워졌으니 룬부(伦布)가 없을 수 없어, 방향을 가려 공작을 일으키니 또한 얼마 아니하여 이루어졌도다. 도강(都纲)과 침실은 하나같이 후장 양식과 같도다.

金瓦映日辉,玉幢扬风舞。自成动静偈,朗标色空喻。以是善因缘,资无碍法喜。祝嘏犹其小,所欣象教宏。

금기와는 해를 비춰 빛나고, 옥 당(幢)은 바람에 나부끼며 춤추도다. 스스로 동정(动静)의 게(偈)를 이루고, 밝게 색공(色空)의 비유를 표하도다. 이 선한 인연으로써 걸림 없는 법희(法喜)를 돕도다. 복을 비는 것은 오히려 그 작은 일이요, 기뻐하는 바는 상교(象教)가 큼이로다.

举似西域居,无来亦无去。上人演法轮,蠢蠢普超度。佐我无为治,雨顺与风调。

들어 서역의 거처에 견주니 옵도 없고 감도 없도다. 상인(上人)이 법륜(法轮)을 연설하니 어리석은 중생을 두루 제도(超度)하도다. 나의 무위지치(无为治)를 도우니 비가 순하고 바람이 고르도다.

众生登寿世,慧炬永光明。

중생이 수세(寿世)에 오르니 지혜의 횃불이 영원히 광명하도다.

合十作赞言,初非为一己。

합장하고 찬언을 지으니 처음부터 한 몸을 위함이 아니로다.

如悬大圆镜,遍照于十方。而镜本无心,回向亦如是。

큰 둥근 거울을 건 듯 시방(十方)을 두루 비추도다. 그러나 거울은 본래 마음이 없으니 회향(回向)도 또한 이와 같도다.

《御制文集》(《어제문집》) ‘수미복수지묘비문’, 청 고종 홍력 찬

《숭년주당》

白括拏嵩年俊山跪

숭년(嵩年)·준산(俊山)이 꿇어

奏为奏闻销算工料银两事

주하되, 공료 은량을 결산하여 보고(奏闻)하는 일에 대하여

恭查嘉庆十九年分经努等查明热河园庭外庙内有殿宇楼座渗漏残坏情形较重及迎水霸坍塌闪裂石堤𫝑须于春令急行修理者共五项敬缮清单于正月二十六日具奏

공숭히 조사하건대 가경 19년분에 신(奴) 등이 조사하여 밝힌 바, 열하 원정(园庭)의 바깥 사찰 안에 전우(殿宇)와 누좌(楼座)가 누수되고 파손된 정형이 비교적 심하고, 및 영수제방(迎水霸)이 무너지고 갈라져 움직인 석제로서 반드시 봄철에 급히 수리해야 하는 것이 모두 다섯 항목이어서, 삼가 청단(清单)을 작성하여 정월 26일에 구주(具奏)하였더니

奉旨文园延景楼如意洲延薰山馆大殿永佑寺后楼扎什伦布吉祥法喜楼德汇门外迎水霸东面石堤着总理工程处派员前往踏勘如系刻不可缓之工即于本年修理钦此

지시를 받들기를, 문원(文园) 연경루(延景楼)·여의주(如意洲) 연훈산관(延薰山馆) 대전·영우사(永佑寺) 후루(后楼)·자시룬부 길상법희루(吉祥法喜楼)·덕회문(德汇门) 밖 영수제방 동쪽 석제는 총리공정처(总理工程处)로 하여금 원을 파견하여 가서 답답(踏勘)하게 하되, 만약 참으로 잠시도 늦출 수 없는 공사이면 곧 본년에 수리하도록 하라 하였다. 흠이(钦此).

钦遵经总理工程大臣派员查勘除扎什伦布吉祥法喜楼院内渗漏围房十七间德汇门外迎水霸东面迤南闪裂石堤长十丈五尺情形稍轻暂拟缓修外其余情形较重𫝑须修理者按例核估银一万七千六百九两三钱三分一厘等因行知前来拏等遵即缮揭奏明饬交岁修监督购料兴修

흠준(钦遵)하여 총리공정대신이 원을 파견하여 답답하게 하니, 자시룬부 길상법희루 원내의 누수된 위방(围房) 십칠 칸과 덕회문 밖 영수제방 동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며 갈라져 움직인 석제 길이 십장오척(十丈五尺)은 정형이 다소 가벼워 잠시 수리를 미루기로 한 외에, 그 나머지 정형이 비교적 심하여 반드시 수리해야 하는 것은 규례대로 견적하여 은 일만칠천육백구십량 삼전삼분일리(一万七千六百九两三钱三分一厘) 등의 연유로 행지(行知)해 왔으므로, 신 등은 준하여 곧 결(揭)을 작성하여 주명하고 세수(岁修) 감독에게 맡겨 재료를 사서 수리를 일으키게 하였다.

嗣据该监督呈称修理得热河文园拆盖延景楼一座三间运走物料拆修有碍藤萝架五间院墙二叚凑长二丈八尺三寸随墙门口一座粘修药栏十堂山道上补安巡杖栏杆十堂楼座周围拆墁石子散水院内河泡上成搭运料浮桥二座凑长十四丈进水沟口成搭𫽮水月牙霸一道长四丈八尺如意洲揭𡧄延薰山馆大殿一座七间前抱厦五间永佑寺揭宣后楼一座五间扎什伦布吉祥法喜楼座前檐平台抱厦楼三间拆修台顶德汇门外迎水霸东面修砌石堤二叚凑长十九丈八尺三寸补安水簸箕一座添砌迎水虎皮石创墩二座堤根添砌虎皮石坦水二叚凑长十八丈七尺接大河上哨挑挖引河一道长一百八十丈成搭𫽮水坝二道凑长五十四丈以及各殿座油饰彩画内里裱糊铺苦锡背圈搭砖灰木厂出运渣土清理地面等项工程除领用修建敦仁镇违神祠用剩枝稍木植四百二十件并行取颜料锡铅纱绢布疋花竹席摆钖钉高丽𥿄张应用外净销筫工料银一万七千九百七十二两四钱二分

이어 해당 감독이 보고하여 이르기를, 수리하여 완료한 바는 다음과 같다 하였다. 열하 문원의 연경루 한 채 세 칸을 헐고 덮으며, 자재를 옮겨 내고 걸리는 등라(藤萝) 시렁 다섯 칸을 헐어 고치고, 원담 두 토막 합쳐 길이 이장팔척삼촌(二丈八尺三寸), 담을 따라 낸 문 한 곳, 약란(药栏) 열 조를 붙여 고치고, 산길 위에 순장(巡杖) 난간 열 조를 보충 설치하고, 누좌 주위의 자갈 산수(散水)를 헐어 새로 깔고, 원내 하포(河泡) 위에 자재 운반 부교 두 채 합쳐 길이 십사장(十四丈)을 설치하고, 물 들어오는 도랑 어귀에 물막이(𫽮水) 월아제(月牙霸) 한 줄기 길이 사장팔척(四丈八尺)을 설치하고, 여의주의 연훈산관 대전 한 채 일곱 칸과 앞 포하(抱厦) 다섯 칸의 지붕을 벗겨 고치고(揭𡧄), 영우사의 후루 한 채 다섯 칸의 지붕을 벗겨 고치고(揭宣), 자시룬부 길상법희루 누좌 앞 처마 평대(平台)의 포하루 세 칸을 헐어 대정(台顶)을 고치고, 덕회문 밖 영수제방 동쪽에 석제 두 토막 합쳐 길이 십구장팔척삼촌(十九丈八尺三寸)을 쌓아 고치고, 물바가지(水簸箕) 한 곳을 보충 설치하고, 물을 맞는 호피석(虎皮石) 창둔(创墩) 두 기를 더 쌓고, 제방 뿌리에 호피석 탄수(坦水) 두 토막 합쳐 길이 십팔장칠척(十八丈七尺)을 더 쌓고, 큰강 상소(上哨)에 이어 인하(引河) 한 줄기 길이 일백팔십장(一百八十丈)을 파내고, 물막이 둑 두 줄기 합쳐 길이 오십사장(五十四丈)을 쌓으며, 및 각 전좌의 유식(油饰)과 채화(彩画), 내부의 표호(裱糊)와 주석 배면 깔기, 전회(砖灰)와 목재 창고, 잔토 반출과 지면 정리 등 항목의 공사에서, 돈인진(敦仁镇) 위신사(违神祠)를 건수(修建)하고 남은 가지 끝 목재 사백이십 점을 가져다 쓰고, 아울러 안료·석연(锡铅)·사견포(纱绢布疋)·화죽석(花竹席)과 못(摆钖钉)·고려종이(高丽𥿄张) 등을 가져다 쓴 외에, 순수하게 공료은 만칠천구백칠십이량 사전이분(一万七千九百七十二两四钱二分)을 결산하였다.

又于上年六七月间屡经雨水续行奏明动用热河节存生息利银修理得围内前宫继德堂等处修砌大墙院墙四叚凑长八丈八尺清音阁修砌院墙二叚凑长二丈七尺五寸坦坦荡荡修砌月牙墙二叚凑长四丈一尺狮子园修砌大墙七叚凑长十二丈三尺普乐寺修砌大墙一叚长三丈安违庙修砌大墙四叚凑长二丈三尺五寸普宁寺修砌大墙二叚凑长十一丈三尺扎什伦怖修砌大墙一叚长二丈三尺布达拉东常处修砌院墙一叚长五丈五尺南路喀喇河屯行宫修砌大墙院墙二叚凑长五丈马圈大墙五叚凑长十二丈五尺常山峪行宫修砌大墙八叚凑长十五丈八尺北路十八里太行宫修砌大墙四叚凑长九丈三尺波洛河屯行宫修砌大墙院墙二叚凑长七丈五尺阿穆呼朗图行宫修砌大墙二叚凑长三丈三尺以及出运渣土清理地面等项工程销𮅕工料银八百三十九两七钱

또 지난해 6, 7월 사이에 거듭 비를 만나, 이어서 주명하여 열하에 절약해 저축된 생식이은(生息利银)을 동원하여 수리하여 완료한 바는, 원내(围内) 전궁(前宫) 계덕당(继德堂) 등처의 대담(大墙)·원담 네 토막 합쳐 길이 팔장팔척(八丈八尺), 청음각(清音阁)의 원담 두 토막 합쳐 길이 이장칠척오촌(二丈七尺五寸), 탄탄탕탕(坦坦荡荡)의 월아담 두 토막 합쳐 길이 사장일척(四丈一尺), 사자원(狮子园)의 대담 일곱 토막 합쳐 길이 십이장삼척(十二丈三尺), 보락사(普乐寺)의 대담 한 토막 길이 삼장(三丈), 안위묘(安违庙)의 대담 네 토막 합쳐 길이 이장삼척오촌(二丈三尺五寸), 보영사(普宁寺)의 대담 두 토막 합쳐 길이 십일장삼척(十一丈三尺), 자시룬부(扎什伦怖)의 대담 한 토막 길이 이장삼척(二丈三尺), 포달라 동상처(东常处)의 원담 한 토막 길이 오장오척(五丈五尺), 남로(南路) 갈랍하둔(喀喇河屯) 행궁의 대담·원담 두 토막 합쳐 길이 오장(五丈), 마권(马圈) 대담 다섯 토막 합쳐 길이 십이장오척(十二丈五尺), 상산욕(常山峪) 행궁의 대담 여덟 토막 합쳐 길이 십오장팔척(十五丈八尺), 북로(北路) 십팔리 태행궁(太行宫)의 대담 네 토막 합쳐 길이 구장삼척(九丈三尺), 파락하둔(波洛河屯) 행궁의 대담·원담 두 토막 합쳐 길이 칠장오척(七丈五尺), 아목호랑도(阿穆呼朗图) 행궁의 대담 두 토막 합쳐 길이 삼장삼척(三丈三尺)을 쌓아 고치고, 및 잔토 반출과 지면 정리 등 항목의 공사에 공료은 팔백삼십구량 칠전(八百三十九两七钱)을 결산하였다.

以上二案通共报销工料银一万八千八百十二两一钱二分造册备文咨报总理工程处派员查验收工经总理工程事务大臣遴派内务府郎中祝麟户部主事额腾伊前赴该工逐一查量覆交总理工程处按例详细斟核内有与例不符之处通共核减银七百八十二两二钱四分七厘净准销工料银一万八千二十九两八钱七分三厘

이상 두 안(案)을 통틀어 공료은 만팔천팔백십이량 일전이분(一万八千八百十二两一钱二分)을 보고 결산하고, 책자를 만들고 문서를 갖추어 총리공정처에 자보(咨报)하여 원을 파견해 조사하고 공사 완료를 검수하게 하였다. 총리공정사무대신이 내무부 낭중(郎中) 축린(祝麟)과 호부 주사(主事) 액등이(额腾伊)를 가려 뽑아 해당 공사에 가서 하나하나 조사하고 측량하게 하고, 다시 총리공정처에 넘겨 규례대로 상세히 질핵(斟核)하니, 그중 규례와 부합하지 않는 곳을 통틀어 은 칠백팔십이량 이전사분칠리(七百八十二两二钱四分七厘)를 감액 심사하고, 순수하게 공료은 만팔천이십구량 팔전칠분삼리(一万八千二十九两八钱七分三厘)를 결산하도록 허가하였다.

又文园拆盖延景楼修做地脚昼夜打霸绹水并拆堆靠楼座有碍山石泊岸山洞高峰以及德汇门外迎水霸石堤修做地脚打𭐏掏水等项活计用过工料银六千六百七十四两七钱六分五厘经总理工程事务大臣覆核无异行知前来努等理合将准销银两细数另缮黄册一并恭呈御览仍照向例咨呈总管内务府大臣覆行查核为此谨奏

또 문원의 연경루를 헐고 덮으며 지각(地脚)을 만들고 밤낮으로 제방을 쳐서 물을 가두며, 누좌에 기대어 걸리는 산석(山石)·박안(泊岸)·산동(山洞)·고봉(高峰)을 헐어 쌓고, 및 덕회문 밖 영수제방 석제의 지각을 만들고 말뚝을 박아(打𭐏) 물을 퍼내는 등 항목의 일에 공료은 육천육백칠십사량 칠전육분오리(六千六百七十四两七钱六分五厘)를 썼다. 총리공정사무대신이 다시 심사하여 다름이 없다고 행지해 왔으므로, 신 등은 이치상 결산이 허가된 은량의 세부 수치를 따로 황책(黄册)에 작성하여 함께 삼가 어람(御览)에 바치고, 여전히 지난 관례대로 총관내무부대신에게 자성(咨呈)하여 다시 조사하고 확인하게 하는 것이 합당하다. 이를 위해 삼가 주한다.

等因于嘉庆二十年六月初六日差副千总李铭赍赴圆明园于初十日恭递十四日赍回奉到朱批内务府知道钦此

이러한 연유로 가경 20년 6월 초6일에 부천총(副千总) 이명(李铭)을 보내 원명원(圆明园)에 가져가게 하여 초10일에 삼가 바치고, 14일에 가져돌아와 받들어 온 주비(朱批)에 ‘내무부가 알았다’ 하였다. 흠차(钦此).

《嵩年奏档》(《숭년주당》) 권17 ‘주위주문소산공료은량사’, 가경 20년 6월 초6일, 청 숭년 등 주

《성무기》

四十五年,高宗七旬万寿,第六世班禅来朝祝厘,诏仿后藏札什伦布式,建须弥福寿之庙于热河。班禅自崇德中同达赖通贡。顺治初,以年老未随达赖入觐者,皆其第四世罗卜藏垂吉嘉穆错也。第五世曰罗卜藏伊什,于乾隆二年示寂,第六世曰罗卜藏巴丹伊什,于乾隆六年登坐,至是年四十有二矣。七月,班禅至,接见于避暑山庄之澹泊诚敬殿。初,上习蒙古语,及平回部、金川,即习回语、西番语,兹因班禅来觐,复习唐古特语,故重译朝见,告语如一家。旧以达赖、班禅有高行,八觐惟跽不拜。至是班禅固请拜,上嘉其恪诚,从之。至京,接见于南苑德寿荆,仍居西黄寺,讲经放参,皆世祖礼达赖处也。京师西山有僧某者,往论佛法,责以宜居西番清净式众,不宜入中国,过受崇奉。班禅谢之。十一月,以痘终京师。诏即其地建清净化域。明年春,舍利金龛西归,驾幸西黄寺拈香送之,而留其高弟子罗卜藏敦珠布者,领班第二十人,住持札什伦布庙传授后藏经律,选内地刺麻百八十人习焉。是年,遗使赍册印封第七世达赖。刺麻时年二十二岁,尚未受封。至是班禅卒,乃封达赖,以绥唐古特之众。

45년에 고종의 일흔 번째 만수를 맞아 제6세 반선이 와서 조하며 축리하니, 조서(诏书)로 후장 자시룬부 양식을 본떠 열하에 수미복수지묘를 세우게 하였다. 반선은 숭덕(崇德) 연간부터 달래와 함께 공물을 바쳐 왔다. 순치(顺治) 초에 나이가 많아 달래를 따라 들어와 조현하지 못한 이는 모두 그의 제4세 나포장수길가목착(罗卜藏垂吉嘉穆错)이다. 제5세는 나포장이시(罗卜藏伊什)로 건륭 2년에 시적(示寂)하였고, 제6세는 나포장파단이시(罗卜藏巴丹伊什)로 건륭 6년에 등좌(登坐)하여 이때 나이 마흔두 살이었다. 7월에 반선이 이르러 피서산장의 담박성경전(澹泊诚敬殿)에서 접견하였다. 처음에 황상께서 몽골어를 익히시고, 회부(回部)·금천(金川)을 평정하실 때에 회어(回语)·서번어(西番语)를 익히셨으며, 이제 반선의 조현을 인하여 다시 당고특어를 익히셨으므로, 여러 겹의 통역을 거쳐 조견하면서도 말이 한집안과 같았다. 옛날에 달래·반선은 높은 행(行)이 있어 여덟 번의 알현에 꿇기만 하고 절하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반선이 굳이 절하기를 청하니 황상께서 그 극성(恪诚)을 아름답게 여겨 그를 따랐다. 경성에 이르러 남원(南苑)의 덕수형(德寿荆)에서 접견하고, 여전히 서황사에 머물게 하여 경을 강하고 방참(放参)하니, 모두 세조께서 달래를 예로 대하던 곳이다. 경사 서산에 어떤 승려가 있어 가서 불법을 논하며, 마땅히 서번의 청정한 가운데 머물러 무리를 법식대로 하고 중국에 들어와 지나치게 숭봉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꾸짖으니, 반선이 사과하였다. 11월에 두창으로 경사에서 세상을 떠났다. 조서로 그 땅에 청정화역(清净化域)을 세우게 하였다. 이듬해 봄에 사리(舍利) 금함이 서쪽으로 돌아가니, 가(驾)가 서황사에 행차하여 향을 집어 보내고, 그의 높은 제자 나포장돈주포(罗卜藏敦珠布)를 남겨 반선의 제자 스무 명을 거느리고 자시룬부묘에 주석하여 후장의 경율을 전수하며, 내지 라마 백여든 명을 가려 배우게 하였다. 이 해에 사신을 보내 책인(册印)을 가져가 제7세 달래를 봉하였다. 라마는 당시 스물두 살로 아직 봉해지지 않았다가, 이에 이르러 반선이 세상을 떠나자 이에 달래를 봉하여 당고특의 무리를 어루만져 달랜 것이다.

《圣武记》(《성무기》) 권5 ‘국조무수서장기상’, 청 위원 찬

《교례당시집》

皇帝四十有五年,班禅万里来朝天。

황제의 마흔다섯 번째 해, 반선이 만 리를 걸어와 하늘을 조하도다.

诏建扎什伦布庙,仿厥制以居之焉。

조서로 자시룬부묘를 세우니 그 제도를 본떠 그를 머물게 하였도다.

琳宫巍峨数十丈,金碧照耀青山巅。朱门沉沉静不启,巨字四体当中𫔔。峰回树锁望靡极,天半隐隐楼台悬。黄衣比邱六时课,撞钟伐鼓声喧阗。牟尼夜腾宝月朗,婆律昼结慈云圆。列藩新旧众蒙古,膜拜顶礼心精虔。此僧虽寂神不灭,再世复得为班禅。递相授受主彼教,亦如衣钵宗风传。历数百载弊稍出,灵异现示非从前。因时立法圣人事,革除积习无拘牵。金瓶贮名令探取,守臣监视公不偏。自兹卫藏众僧俗,益仰圣德巍巍然。

림궁(琳宫)이 높이 솟아 수십 장이요, 금벽(金碧)이 푸른 산 꼭대기에 비추어 빛나도다. 붉은 문이 깊이 고요히 열리지 않고, 큰 글자 네 가지 문자가 한가운데 걸렸도다. 봉우리 돌고 나무에 가려 바라보아도 끝이 없고, 하늘 한가운데 아련히 누대가 매달렸도다. 황의 비구(比邱)가 여섯 때의 과(课)를 하니 종을 치고 북을 울리는 소리가 요란하도다. 모니(牟尼)가 밤에 보배 달이 솟아 밝게 하고, 파율(婆律)이 낮에 자비의 구름을 뭉쳐 둥글게 하도다. 신구(新旧) 여러 번국의 뭇 몽골이 맴백(膜拜)하고 정례(顶礼)하여 마음이 정성스럽고 삼가도다. 이 승려가 비록 적멸하였어도 신(神)은 멸하지 않아, 다시 태어나 또 반선이 되었도다. 대대로 주고받아 그 가르침을 주관하니, 또한 의발(衣钵)을 전하고 종풍을 잇는 것과 같도다. 수백 년을 지나 폐단이 조금 나오니 영이(灵异)의 시현(现示)이 예전과 아니하도다. 때를 따라 법을 세움은 성인의 일이요, 쌓인 습관을 혁파하고 구속받지 않도다. 금병(金瓶)에 이름을 담아 뽑게 하고, 지키는 신하가 감시하여 공평하여 치우치지 않도다. 이로부터 위장의 뭇 승려와 속인이 더욱 성덕(圣德)을 우러르니 높고 높도다.

我皇神武古莫比,四海震詟无烽烟。俘达瓦齐定准部,馘索诺木平金川。昨来复降廓尔喀,异域稽首争相先。称臣纳贡受约束,须弥福寿长绵绵。太平佛亦效瑞应,舍利腾跃金刚坚。庙前经过瞻壮丽,击壤聊当康衢篇。

우리 황상의 신무(神武)는 옛적에 비할 바 없어 사해가 진복(震詟)하여 봉화 연기가 없도다. 달와제(达瓦齐)를 사로잡아 준부(准部)를 평정하고, 샬낙목(索诺木)의 목을 베어 금천(金川)을 평정하였도다. 얼마 전에는 또 곽이객(廓尔喀)을 항복시키니 이역이 머리를 조아려 다투어 앞서도다. 신하를 칭하고 공물을 바치며 약속을 받드니, 수미복수(须弥福寿)가 길이 이어지도다. 태평의 부처도 또한 상서로운 응험을 나타내니, 사리가 솟아 뛰고 금강(金刚)처럼 굳도다. 절 앞을 지나며 장려함을 우러러 보고, 격양(击壤)으로써 강구(康衢)의 노래를 삼도다.

《校礼堂诗集》(《교례당시집》) 권8 ‘열하팔관시·자시룬부묘’, 건륭 계축년, 청 능정감 찬

옛 사진

1930년대 간행

아세아사진대관사의 『아세아대관』 제11집은 수미복수지묘를 특집으로 하여 사원 전경·산문·묘고장엄전·도강 상층 불당과 유리불탑 등의 옛 모습을 수록하였다. 원간(原刊)에는 촬영자와 각 사진의 구체적인 촬영 연도가 표명되어 있지 않다.

1934–1935년

헤다 모리슨은 『Travels of a Photographer in China, 1933–1946』에서 1934년 여름에 처음으로 열하를 찾았고, 1935년에 다시 찾아 건축 촬영에 더 적합한 대형 카메라로 바꾸어 보충 촬영을 하였다고 기술하였다. 책의 열하 장(章)에는 제목이 분명한 수미복수지묘 사진 다섯 장이 연달아 실려, 사원 원경·유리불탑·건축군·안뜰 지붕 용 장식과 묘고장엄전 금정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