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현공사의 역사는 보통 북위 후기부터 이야기한다. 태화 15년(491), 효문제는 조서를 내려 평성 성내의 도단(道壇)[1]을 “도성 남쪽 상건수(桑乾水)의 북쪽, 악산(嶽山)의 남쪽”으로 옮기고 이름은 여전히 숭허사(崇虛寺)라 하게 했다. 오늘날 흔히 말하는 491년 창건설은 바로 이 숭허사를 현공사와 연결한 것이다. 그러나 숭허사가 곧 자요협 속의 현공사인지는 조서가 밝히지 않았다.
육백여 년 뒤, 금 대정 16년(1176) 중양절 다음 날, 이름을 남기지 않은 한 나그네가 상인과 역마가 다니는 길을 따라 자요협으로 들어왔다. 길이 절벽 사이에서 꺾이자 그는 문득 집들이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위로는 산꼭대기에 닿지 않고 아래로는 골짜기 바닥에 내려앉지 않으며, 돌벽을 파내어 감실을 만들고 나무 가대가 누각을 떠받치고 있었다. 이때 절에는 이미 석감과 목조 누각, 공중에 뜬 집이 있었지만, 나그네는 그것이 도대체 어느 대에 처음 세워졌는지 알 수 없었다.
현공사에 오른 나그네는 마흔아홉 살의 주지 보자(普慈)와 일흔두 살의 행만(行滿)을 만났는데, 두 사람 모두 운중 선녕 석불원의 승려였다. 나그네의 글에서 절벽 사이의 나날은 매우 청빈했다. 승려들은 삼베 옷을 입고 풀과 나무 열매를 먹으며, 연중 문을 닫고 손님을 사절했다. 난간 곁에서 골짜기 바닥을 내려다보면 역길 위의 사람과 말이 개미 행렬처럼 작게 보였다. 나그네는 본래 길을 가다 들른 것이었지만, 끝내 돌아갈 줄 모르고 유람하다가, 떠나면서 이 하루와 절에서 보고 들은 것을 비기(碑記)로 적었다.
명대에 이르러 주병모(周炳謨)는 일행과 함께 잔도를 따라 조심스레 기어 올랐다. 창 앞으로는 연악령(蓮嶽嶺)이 바로 마주 보이고, 고개를 숙이면 바로 철문관(鐵門關)이었다. 주병모는 이곳에 옛날 군사를 주둔시켜 관을 지키던 나날을 떠올리고, 다시 절 안의 늙은 승려가 조용히 수행하는 모습을 보았다. 수레에 올라 떠날 때 산사의 경(磬) 소리가 시내 굽이 너머로 들려왔다.
숭정 6년(1633), 서하객(徐霞客)도 자요협으로 들어왔다. 그는 먼저 양쪽 절벽에서 위아래로 늘어선 돌 홈을 보고, 물이 불어날 때 누군가 여기에 나무를 꽂아 길을 놓았으리라 짐작했다. 옛 잔도[2]는 이미 황폐하여 높은 곳에 큰 나무 두 토막만 매달려 남아 있었다. 다시 세 굽이를 돌자 협곡은 점점 좁아지고 절벽은 점점 높아지더니, 현공사의 층층 누각과 굽은 정자가 서쪽 절벽 반허리에서 모습을 드러냈으니 신기루 속에 겹겹이 솟은 누대와 같았다. 서하객은 우러러보며 정신이 아득해져 용기를 내어 홀로 절에 올랐다. 문 안으로 들어서니 누각이 높낮이로 엇갈리고 난간 길이 굽이굽이 이어졌다. 승방에는 선감(禪龕)과 밝은 창, 따뜻한 자리가 있어 비좁은 절벽 사이에서도 가지런하고 고요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이백여 년 뒤 현공사의 누각에는 부재가 흔들리고 빠진 곳이 생겼다. 혼원의 사신(士紳)들은 절이 계속 무너질까 걱정하여 일찍부터 손을 보려 했지만, 절벽 아래에 비계를 세울 자리가 없어 번번이 미뤄졌다. 함풍 9년(1859), 목수 유산옥(劉山玉)이 관아에 수리를 청했으나 막 공사를 시작하려는 참에 역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고, 절 수리는 다시 중단되었다. 4년 뒤 혼원의 사신들이 다시 장인들을 불러 모으자, 목수 장정언(張廷彦)이 비계를 세우지 않는 방법을 제안했다. 밧줄 고리 하나는 허리에 묶고 하나는 발로 밟고, 줄 끝은 서까래 판에 매어 사람이 절벽 바깥에서 작업 위치에 따라 오르내리며, 흔들리는 부재는 튼튼히 고정하고 빠진 부분은 메워 냈다. 현공사는 본래 공중에 매달려 있었고, 절을 고치는 사람도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1년이 채 안 되어 공사가 끝났다.
오늘날 보는 건축은 명청 때 중수한 누각이 주를 이루며, 여전히 가파른 절벽을 따라 남쪽에서 북쪽으로 차츰 높아진다. 감실은 바위벽에 박혀 있고 목조는 바깥으로 뻗어 나와, 사람이 누각 사이를 오갈 때 발밑에는 언제나 평지가 없다. 뒤돌아 보면 골짜기 바닥의 길은 여전히 이 공중에 뜬 집들 아래로 지나간다.
역사 문헌
위서
太和十五年秋,诏曰:“夫至道无形,虚象为主。自有汉以后,置立坛祠,先朝以其至顺可归,用立寺宇。昔京城之内,居舍尚希。今者里宅栉比,人神猥凑,非所以祗崇至法,清敬神道。可移于都南桑乾之阴,岳山之阳,永置其所。给户五十,以供齐祀之用,仍名为崇虚寺。可召诸州隐士,员满九十人。”
태화 15년 가을, 조서에 이르기를 “지극한 도는 형상이 없으니 허미한 상(象)을 근본으로 삼는다. 한나라 이래로 단사(壇祠)를 세웠고, 선조는 그것이 지극히 순하여 돌아갈 바가 된다 하여 절을 세웠다. 옛적 경성 안에는 살림집이 오히려 드물었으나, 지금은 민가가 빗살처럼 빽빽하여 사람과 신이 뒤섞여 모여 있으니, 이는 지극한 법을 공경하고 신도(神道)를 청정히 공양하는 바가 아니다. 도성 남쪽 상건수의 북쪽, 악산의 남쪽으로 옮겨 영구히 그 자리에 두되, 쉰 호를 주어 제사 비용에 충당하고 이름은 여전히 숭허사라 하라. 여러 주의 은사(隱士)를 불러모아 정원을 아흔 명으로 하라.”
현공사기병시
碑高一尺六寸七分,广一尺九寸,二十四行,行字不一,字径七分,行书。今在浑源州。
비의 높이 1척 6촌 7푼, 너비 1척 9촌이며, 스물네 행에 행마다 글자 수가 다르고 글자 지름은 7푼, 행서로 썼다. 지금 혼원주에 있다.
大定拾陆年,重九后二日,天晴气爽,月朗风轻,日口口龺同𣸯邑之南六七里,石峡槁栈阁,若巴蜀之道,则经商大驿路也。风逥路转,仰自临壑之数峰,犹羙目不系,舍,信悬空之𪨷。古之遗迹,始自建兴扵何代,又不知栖隠者口也,明巍峩之万丈中焉凿石为龛,植木为榭,上不至扵山之巅,下不至扵陆地,悬空置屋,山山晻映,似愽壁之翆幈,流水潺湲泻清声。之淑玉,非丹青而图画者哉!嗟乎!一废一兴,迄今几千百年矣。余闭目想之,昔时游行乐所,了然可数,若比扵斯,未之有也。真物多𫠦韬之地也。居此者以息其心,俱忘物我。久口富贽扵浮云,甘受贫𥨪,不忧戚,弃骨肉,佀栖枝宿鸟,时口同居,凭槛视行人徃还,有如移蚁。不生七情,屏绝六𫻎,衣麻布食,可以草木实为吾有形。已知县患,体轻清而圎同太虚,遗骨骸而复㱕地大,遇患难而不屈,临死生而不惧,然后与天相终,是为常也。访二禅者,乃敦朴之人也,系云中宣寕县石佛院僧也。普慈四十有九,住持,不入俗门;行满七十二岁,荷真未甞有惮。相挈八𥝝,水乳难公顺味,犹周一日,真大善知炽也。始我乐而忘归,髙述其游焉,故为记耳。
대정 16년, 중구(重九) 다음 이튿날, 하늘은 맑고 기운은 상쾌하며 달은 밝고 바람은 가벼웠다. □□하여 읍의 남쪽 육칠 리쯤, 돌협곡에 높은 잔각이 있으니 파촉의 길과 같아, 장사꾼이 다니는 큰 역길이다. 바람 따라 길을 돌아 우러르니, 못에 임한 여러 봉우리가 아름다운 눈매처럼 마음을 붙들어 □□하니, 참으로 공중에 매달린 □이었다. 옛 유적이 비롯된 것은 어느 대의 건흥(建興)인지, 또 그곳에 숨어 지낸 이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 밝고 우뚝한 만 길 절벽 한가운데 돌을 파내어 감(龕)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누정을 세웠으니, 위로는 산꼭대기에 이르지 않고 아래로는 뭍에 닿지 않아, 공중에 매달려 집을 두었다. 산과 산이 서로 비추어 널비 위의 푸른 병풍과 같고, 흐르는 물은 졸졸 맑은 소리를 흘려보낸다. 이 아름다운 옥이, 그림물감이 아니면서 그림이 아니겠는가! 아아! 한 번 폐하고 한 번 흥하여 지금까지 몇 천백 년이 되었다. 내가 눈을 감고 생각하니, 옛날에 노닐던 즐거운 곳들은 분명히 셀 수 있으나 이곳에 견줄 만한 곳은 없었다. 참으로 사물이 자취를 감추기 좋은 땅이다. 이곳에 사는 이는 이로써 마음을 쉬게 하여 물아(物我)를 함께 잊는다. 오래도록 부귀를 뜬구름처럼 여기고, 가난과 곤궁을 달게 받아 근심하지 않으며, 골육을 버리고 가지에 깃들어 자는 새처럼 때로 □ 함께 지내고, 난간에 기대어 오가는 행인을 보니 마치 옮겨 다니는 개미와 같았다. 칠정(七情)을 일으키지 않고 육진(六塵)을 물리치며, 삼베 옷을 입고 초목의 열매를 먹으니 이것으로 우리의 유형(有形)을 삼을 만하다. 이미 현관의 근심을 알고 몸은 가볍고 맑아 둥글게 태허와 같으며, 뼈를 남기고도 다시 대지로 돌아가고, 환난을 만나도 굽히지 않으며 죽음과 삶에 임해서도 두려워하지 않은 뒤에야 하늘과 함께 마치니, 이것이 곧 항상함이다. 두 선승(禪僧)을 찾으니 모두 돈박한 사람으로, 운중 선녕현 석불원의 승려이다. 보자(普慈)는 마흔아홉으로 주지이며 속세의 문에 들지 않았고, 행만(行滿)은 일흔두 살로 진리를 짊어지고 한 번도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서로 이끌며 여덟 □□, 물과 젖처럼 어울리기 어려운 맛도 함께 순하게 하니 온종일을 함께 지내기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큰 선지식이었다. 비로소 나는 즐거워 돌아갈 줄을 잊고, 높이 그 유람을 적고자 하여 이에 기를 지을 따름이다.
识破尘缘万事休,翛然归去罢追求。踈人垒壁凿石磴,厌俗悬崖置屋楼。朙月清风真徇用,皴松痩栢旻吾俦。经年掩戸绝賔客,独乐玄中玄更幽。
세속의 인연을 꿰뚫어 보니 만사가 그치고, 홀연히 돌아가 추구함을 그친다. 사람이 드문 곳 쌓은 벽에 돌계단을 뚫고, 세속을 싫어하여 절벽에 집과 누각을 두었다.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은 참으로 쓸모가 있고, 주름진 소나무와 마른 잣나무는 나의 벗이다. 해를 넘겨 문을 닫고 빈객을 끊으니, 홀로 현묘함 속을 즐기니 그 현묘함이 더욱 그윽하다.
在望村内头陁僧行口立石
재망촌(在望村) 안의 두타승(頭陁僧) 행□이 비를 세웠다.
望岩村施主王公庭马信马囗口马口口
망암촌(望岩村) 시주 왕공정(王公庭), 마신(馬信), 마□□, 마□□.
此悬空寺记并诗。悬空寺一统志在浑源州南磁窑峡内,石壁巉崖,悬空结构,楼阁相望,下临无地。寺创自后魏,此刻未见著录。
이상은 현공사기병시이다. 현공사는 『일통지』에 혼원주 남쪽 자요협 안에 있다 하였으며, 돌벽이 험준한 절벽이고 공중에 매달려 구조되어 누각이 서로 마주 보고, 아래로는 땅에 임한 곳이 없다. 절은 후위에서 창건되었으며, 이 각석은 기록에 보이지 않았다.
소문재집
香地凭虚结构空。廊檐千叠翠阴中。莲花月漏堪分影,水国波光足悟空。不住心原生象界,有为法亦窍鸿蒙。登来自在天无际,面壁峰前好课功。
향기로운 땅은 허공을 의지해 구조되었으니 공(空)이라, 회랑과 처마가 겹겹이 푸른 그늘 속에 있다. 연봉(蓮峰)에 새는 달빛은 그림자를 나눌 만하고, 물의 나라 물빛은 공(空)을 깨닫기에 족하다. 머물지 않는 마음이 본래 상계(象界)에서 나고, 유위법(有爲法) 또한 홍몽(鴻蒙)에 구멍을 뚫는다. 올라오니 저절로 하늘이 끝없이 펼쳐지니, 벽을 마주한 봉우리 앞에서 공부하기 좋도다.
존가시고
一寺空虚里,危栏高几层。悬崖惟度鸟,无路去斋僧。云隐多罗树,天垂宝月灯。尘心何处觉,孤磬下崚嶒。
한 절이 공허 속에 있고, 위태로운 난간이 높이 몇 층인가. 절벽에는 오직 새만이 넘나들고, 재승(齋僧)에게 갈 길이 없구나. 구름은 다라수(多羅樹)를 숨기고, 하늘은 보월등(寶月燈)을 드리웠네. 속된 마음 어디에서 깨달으랴, 외로운 경 소리가 층층한 산 아래로 내려오네.
세미당시집
梵宫遥望挂青山,栈路相将细细攀。窗外平临莲岳岭,尊前下视铁门关。当年斥堠屯兵苦,此日焚修老衲闲。徙倚登车思往事,数声清磬渡溪湾。
범궁(梵宮)을 멀리 바라보니 푸른 산에 걸려 있고, 잔도를 따라 서로 이끌며 가늘게 기어 오른다. 창 밖으로는 연악령이 나란히 임해 있고, 술자리 앞 아래로 철문관을 굽어본다. 그해 파수 초소에 군사를 둔 고됨이여, 오늘날 분향 수행하는 늙은 중의 한가로움이여. 서성이다 수레에 올라 지난일을 생각하니, 몇 번인가 맑은 경 소리가 시내 굽이를 건너오네.
서하객유기
循之抵山下,两壁削立,一涧中流,透罅而入,逼仄如无所向,曲折上下,俱成窈窕,伊阙双峙,武夷九曲,俱不足以拟之也。时清流未泛,行即溯涧,不知何年两崖俱凿石坎,大四五尺,深及丈,上下排列,想水溢时插木为阁道者,今废已久,仅存二木悬架高处,犹栋梁之巨擘也。三转,峡愈隘,崖愈高。西崖之半,层楼高悬,曲榭斜倚,望之如蜃吐重台者,悬空寺也。五台北壑亦有悬空寺,拟此未能具体。仰之神飞,鼓勇独登。入则楼阁高下,槛路屈曲,崖既矗削,为天下巨观,而寺之点缀,兼能尽胜。依岩结构,而不为岩石累者,仅此僧寮位置适序,凡客坐禅龛,明窗暖榻,寻丈之间,肃然中雅。既下,又行峡中者三四转,则洞门豁然,峦壑掩映,若别有一天者。
그 길을 따라 산 아래에 이르니, 양쪽 벽이 깎은 듯 서 있고 한 줄기 시내가 가운데로 흐른다. 틈을 비집고 들어가면 좁고 답답하여 나아갈 곳이 없는 듯하다가 굽이굽이 오르내리며 모두 아득하게 이어지니, 이궐(伊闕)이 쌍벽으로 서 있는 것이나 무이(武夷)의 구곡이라도 이에 비할 수 없다. 이때 맑은 물은 아직 넘치지 않아 걸으며 곧 시내를 거슬러 오르는데, 어느 해인지 양쪽 절벽에 모두 돌 홈을 팠으니 큰 것이 4~5척이고 깊이가 1장에 이르며 위아래로 늘어서 있다. 짐작하건대 물이 넘칠 때 나무를 꽂아 각도(閣道)를 만든 것인데, 지금은 폐한 지 오래되어 큰 나무 두 개만 높은 곳에 걸쳐 있으니 오히려 들보 중의 거걸이다. 세 번을 돌자 협곡은 더욱 좁아지고 절벽은 더욱 높아졌다. 서쪽 절벽의 한가운데 층층 누각이 높이 매달리고 굽은 정자가 비스듬히 기대어 있어, 바라보면 신기루가 겹겹의 대를 뿜어낸 듯하니 현공사이다. 오대산 북쪽 골짜기에도 현공사가 있으나 이에 견주어 그 모습을 갖추지 못한다. 우러러보니 정신이 날아갈 듯하여 용기를 내어 홀로 올랐다. 들어가니 누각이 높낮이로 이어지고 난간 길이 굽이굽이하며, 절벽이 이미 우뚝 깎아 세워져 천하의 거대한 절경인데 절의 배치가 또한 그 아름다움을 다한다. 바위를 의지해 구조되면서도 바위돌에 얽매이지 않은 것은 오직 이 승료(僧寮)의 배치가 적절히 질서 있기 때문이니, 범객이 앉는 선감과 밝은 창, 따뜻한 자리가 십여 척 사이에서 엄숙하면서도 아담하다. 내려온 뒤 다시 협곡 속을 서너 번 돌아 나가니 동굴 같은 문이 환하게 트이고 봉우리와 골짜기가 가리고 비추어 마치 별천지가 있는 듯하였다.
운중군지
悬空寺州南十里磁窑口,崖悬穴三百余丈,后魏建。
현공사는 주 남쪽 10리 자요구에 있고, 절벽 동굴이 삼백여 장에 매달려 있으며, 후위 때 세웠다.
[옹정] 산시통지
悬空寺,在州南恒山下磁窑峡,悬崖三百余丈,崖峭立如削,倚壁凿窍,结构层楼,危梯仄磴,上倚遥空,飞阁相通,下临无地,恒山第一景也。后魏时建。
현공사는 주 남쪽 항산 아래 자요협에 있고, 절벽이 삼백여 장으로 늘어서 있으며, 절벽이 깎은 듯 가파르게 서 있다. 벽을 의지해 구멍을 파내고 층층 누각을 구조했으며, 위태로운 사다리와 좁은 계단이 위로 아득한 허공에 기대고, 날아가는 듯한 누각이 서로 통하며, 아래로는 땅에 닿은 곳이 없으니 항산 제일의 경치이다. 후위 때 세웠다.
장사부악록지
忆己未秋游恒岳,自浑源州南入,可二十里至山足。其间有所谓悬空寺者,峭壁百丈,寺县其中,观之令人惊心骇目。时秋将半,白草黄沙,塞雁哀鸣,边城景色,莾苍弥望。路委折,不甚陡峻,骑行可至山腰,过此则拾级而登。土人指十鳌相告,因与同游诸子分韵赋诗。及至顶谒岳帝,日正中天,秋阳暴烈,俯视山下,则已黑云宻布,大雨忽作,雷声殷殷,反在足下。噫嘻,岂不一大观也哉!
기미년 가을에 항악(恒岳)을 유람한 것을 생각하니, 혼원주 남쪽에서 들어가 이십 리쯤에 산기슭에 이르렀다. 그 사이에 이른바 현공사라는 것이 있어 깎아지른 벽 백 장 사이에 절이 걸려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놀라고 눈이 아찔하게 한다. 이때 가을이 거의 반이라 흰 풀과 누런 모래, 변경의 기러기가 슬피 울며 변방 성곽의 경치가 광막하게 눈에 가득하였다. 길은 굽이졌으나 심하게 가파르지 않아 말을 타고 산중턱까지 갈 수 있고, 이곳을 지나면 돌계단을 밟고 오른다. 토인이 십오(十鰲)를 가리키며 알려 주기에 함께 노닌 여러 사람과 운을 나누어 시를 지었다. 정상에 이르러 악제(岳帝)를 알현하니 해가 한창 중천에 있고 가을 햇살이 몹시 뜨거웠는데, 산 아래를 굽어보니 이미 검은 구름이 빽빽이 깔리고 큰비가 갑자기 쏟아지며 천둥소리가 우렁차게 도리어 발밑에서 울렸다. 아아, 이 어찌 한바탕 큰 구경거리가 아니겠는가!
흠정대청일통지
悬空寺。在浑源州南磁窑峡口。石壁巉岩,悬空结构,飞阁相望,下临无地。寺创自后魏,盛于元时,近增三殿,称奇观焉。
현공사. 혼원주 남쪽 자요협 어귀에 있다. 돌벽이 험준한 바위이고 공중에 매달려 구조되어, 날아가는 듯한 누각이 서로 마주 보고 아래로는 땅에 임한 곳이 없다. 절은 후위에서 창건되어 원대에 번성했으며, 근래 세 전각을 증축하여 기이한 절경이라 일컫는다.
항산지
遥闻十里钟,在山忽在水。盘折叩山门,老僧闲如此。戏严缀虚空,石阁轻如纸。携手说飞登,白云檐外止。
멀리 십 리 밖의 종소리를 들으니 산에 있다가 문득 물에 있다. 굽이굽이 산문을 두드리니 늙은 승려가 이토록 한가롭다. 장난스럽게도 허공에 수놓았으니 돌 누각이 종이처럼 가볍다. 손을 잡고 날아 오른다 하니 흰 구름이 처마 밖에 머문다.
刬石成香地,凭虚结构工。梵宫依碧𪩘,栈阁俯丹枫。涛壮磁窃雨,僧寒谷口风。跻攀真不易,遥望意无穷。
돌을 켜내어 향기로운 땅을 만들고, 허공을 의지해 구조한 공(工)이여. 범궁은 푸른 봉우리에 의지하고, 잔각은 붉은 단풍을 굽어본다. 자협(磁峽)의 비에 물소리 장하고, 골짜기 어귀 바람에 승려가 춥다. 기어 오르기 참으로 쉽지 않으니, 멀리 바라보니 뜻이 다함이 없다.
홍조전유일기
复望悬空寺,又为之神色飞越。盖其横粘千仞壁上,凌空妙凑,仰可见底。寺状则旁耸而中凹,乍合为三,乍离而成九,莫不架殿戴阁,傍阁撑台,面面风棂,仿佛浮图之鼎峙。中间飞桥交绾,雕槛斜穿,人行其间,只觉风飏云流,互相容与,为之伫立想象者久之,盖诧神工匪由人造矣。须臾,因崖南一线,沿之以升,其中或如来、弥勒同龛,或老子、纯阳异室。虽方丈之地,而禅房蒲室、奥馆凉台,缭曲往复,幻化不测,只觉千门万户,俨入建章宫阙,奇矣哉!
다시 현공사를 바라보니 또 신색이 날아오르는 듯하였다. 대개 그것이 천 길 벽 위에 가로로 붙어 있어 허공을 넘나들며 묘하게 맞물려 있고, 우러르면 바닥까지 보인다. 절의 형상은 옆이 솟고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언뜻 셋으로 합쳐졌다가 언뜻 아홉으로 갈라지며, 전각을 가설하고 누각을 얹지 않은 곳이 없고, 누각 곁에 대(臺)를 받치며 면면마다 바람 드나는 창살이 있어 마치 부도(浮圖)가 솥발처럼 서 있는 듯하다. 한가운데 날아가는 듯한 다리가 서로 엮이고 조각한 난간이 비스듬히 뚫려, 사람이 그 사이를 걸으면 다만 바람이 휘날리고 구름이 흐르며 서로 한가로이 어울리는 것만 느껴져, 이로 인해 오랫동안 서서 상상하게 되니 대개 신의 공교로움이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님을 놀라워했다. 잠시 뒤 절벽 남쪽의 한 줄기를 따라 이를 타고 오르니, 그 가운데는 여래와 미륵이 같은 감실에 있기도 하고 노자와 순양(呂洞賓)이 다른 방에 있기도 하였다. 비록 한 장(方丈) 남짓한 땅이지만 선방과 포실(蒲室), 깊은 관(館)과 서늘한 대(臺)가 휘감겨 오가며 변화를 헤아릴 수 없어, 다만 천 개 문과 만 개 호(戶)에 들어선 듯하여 엄연히 건장궁(建章宮) 궁궐에 든 것 같으니 기묘하도다!
옛 사진
1937년
부증상(傅增湘)은 1936년 4월 22일부터 30일까지의 북악(北岳) 행적을 『북악유기』로 써서 1937년 『예림월간: 유산 특집호』 제9권에 발표했다. 같은 권에 실린 현공사 옛 사진은 골짜기 바닥 방향에서 절벽에 임한 건축군의 전체 윤곽을 보존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는 항산 풍경명승구 관리센터 재게시 페이지를 보라.
참고 자료
- 진웨이, 「현공사 금대 비기 고」, 『산시다퉁대학학보(사회과학판)』 2021년 제2기.
- 혼원현 인민정부, 「현공사」, 2024년 10월 24일.
- 항산 풍경명승구 관리센터, 「고건축 기록으로 보는 산시|항산 현공사」.
- 항산 풍경명승구 관리센터, 「옛 명사들이 본 세 가지 현공사」.
- 『원후이바오』, 「현공사 수리: 절벽 곁의 춤, 다시 천 년을 서다」, 2016년 5월 25일.
- 리위밍·왕야안 주편, 천쉐펑 분책 주편, 『삼진석각대전·다퉁시 혼원현권 속편』, 삼진출판사, 2015년.